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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페이지 내용 : 남녀노소 자전거를 탄다는 것도 코펜하겐의 진풍경 중 하나다. 도시를 깨끗하고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해 코펜하겐에서는 자동차에 300%에 달하는 부가가치 세를 매겨 자동차를 타지 않는 삶을 유도한다. 덕분에 대다수의 시민은 이동수단으로 자전거를 애용한다. 매일 아침 1520만 명 전체 인구의 3분의 1 이 자전거로 출퇴근이나 등하교를 하고, 85% 이상의 시민이 자전거를 보유하고 있다. 자전거용 고속도로가 따로 있고, 신호등은 자동차가 아닌 자전거 평균 시속인 20km에 맞춰져 있는 데다, 자전거 도로의 폭이 2m로 넓어 안전하다. 자전거가 주 교통수단이 아닌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자전거 교통사고의 사망자수가 10만명 당 4.1명인 반면, 코펜하겐은 0.6명에 그친다. 유럽 최초 ‘위드 코로나’를 실현하다 이코노미스트의 ‘안전한 도시’ 순위에 코펜하겐이 1위로 선정된 데는 덴마크의 코로나19 방역 대응도 한 몫을 했다. 덴마크는 코로나 방역에 성공하며 유럽연합 국가 최초로 코로나 규제를 모두 해제하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발 빠른 봉쇄와 높은 백신 접종률 덕분이다. 지난해 3월, 덴마크는 유럽에서 처음으로 국가 봉쇄령을 내리는 강력한 보건 정책을 펴왔다. 학교, 식당, 교회 등 대규모 모임이 이루어지는 장소는 모두 폐쇄됐고 기업은 재택근무에 들어갔다. 그럼에도 확진자수가 급증하자 덴마크는 과학적 분석으로 중요한 위기를 넘겼다. 매 분기점마다 전자 공학, 감염학, 경제학, 수학, 커뮤니케이션학, 정치학, 심리학 등 각 분야의 전문가 그룹이 모여 방역 완화 이후에 닥칠 변화를 면밀히 검토하고, 1-2주 단위의 짧은 계획을 세워 점차 방역을 풀어나갔다. 전문가 그룹이 분석한 방역 완화 보고서는 전 국민에게 투명하게 오픈되어 방역당국의 신뢰를 높였다. 국가의 지침을 믿게 된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백신 접종에 동참했고, 백신 접종률이 12세 이상 인구의 80%를 넘어서며 마침내 마스크를 벗고, 완전한 일상 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안데르센의 고장, 뉘하운 항구를 가다 코펜하겐은 덴마크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동화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이 활동한 도시이기도 하다. 그의 대표작 〈성냥팔이 소녀〉, 〈인어공주〉 등의 이야기는 모두 코펜하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덴마크 오덴세 지역에서 가난한 구두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난 안데르센은 배우의 꿈을 꾸며 홀로 왕립 극장이 있는 코펜하겐에 입성했다. 하지만 발음이 좋지 못하다는 이유로 번번이 배역을 맡는 데 실패한다. 그러던 중 안데르센은 우연히 자신에게 Story+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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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페이지 내용 : 글쓰기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동화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코펜하겐의 뉘하운 항구는 안데르센이 집세를 내지 못해서 여러 번 이사를 거듭하며 살았던 지역 이다. ‘새로운 항구’라는 의미의 이곳은 먼 옛날, 항구 노동자들이 휴식을 취하던 거리였다. 항해를 마치고 돌아온 선원들은 운하를 따라 길게 늘어선 선술집에서 먹고 마시며 고단한 일상을 위로했다. 지금은 알록달록한 색감의 건물과 운하, 레스토랑 등이 어우러진 대표적 관광지가 됐다. 색색의 건물이 운하의 물에 비친 모습은 마치 동화의 한 장면 같다. 이 독특한 풍경 덕분일까. 안데르센의 첫 동화집은 뉘하운 20번지에 위치한 집에서 탄생했다. 오전의 뉘하운이 고즈넉하고 조용한 동화 속 마을이라면,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는 오후의 뉘하운은 시끌벅적한 파티의 한 장면 같다. 오색빛깔 건물에 자리한 레스토랑과 술집에서는 파라솔을 펴기 시작하고, 수많은 사람들은 쪼르르 모여 앉아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며 평화로운 분위기에 취해간다. 코펜하겐에 왔다면, 인어공주를 보자 뉘하운에서 멀지 않은 곳에 덴마크의 요새 ‘카스 텔레트’가 있다. 코펜하겐을 찾은 관광객이라면 빠지지 않고 들르는 이곳의 해안가 바위 위에는 ‘인어공주 동상’이 있다. 이 동상은 조각가 에드바르 에릭슨에 의해 1913년 제작된 것이다. 덴마크 왕실의 공식 맥주회사 ‘칼스버그’의 2대 사장인 ‘카를 야콥센’은 코펜하겐 왕립극장에서 〈인어공주〉 발레를 감상하고 난 뒤, 이 공연에 매료되어 에드 바르 에릭슨에게 동상 제작을 의뢰해 코펜하겐에 선물했다고 한다. 짙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바위에 홀로 앉은 동상은 마치 왕자를 그리워하는 인어공주의 처량한 모습이 되살아난 것 같다. 높이 125cm의 작은 동상이지만 이 인어공주의 자태를 보기 위한 사람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수많은 관심을 받으며 인어공주는 팔과 머리가 떨어져나가고, 페인트를 뒤집어쓰는 등 다양한 수난을 겪으면서도 꿋꿋이 그 자리에 남아 어느덧 코펜하겐의 상징이 됐다.57

탐 색